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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월출산과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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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24  11: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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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전남 영암에 있는 월출산이 오늘의 목적지다. 어제 도착하여 아침에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또 잠시 후에 새벽 기도회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모내기가 한창이라 창밖에 보이는 것이 논과 월출산이 눈앞에 가로 놓여 있다.


어제는(2009년) 우리 부부 결혼 41부년 기념일이었다. 이번 기념 여행에는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과 동행이다.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하루 늦게 남편은 부천에서, 나는 서산에서 합세하여 이곳 월출산 온천까지 왔다. 강산이 네 번 변한 뒤 첫 번째 기념일이다. 옛날 우리가 데이트 할 때에는 재건 데이트란 것이 있었다. 어느 빵집 앞에서 혹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15원하는 자장면으로 식사를 하고 무조건 걷는 것이다. 그 당시 쌀 한 가마 값은 6,500원이었다.


이번 여행은 어떤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좋은 옷차림을 하였으니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 좋은 먹거리도 준비되어 있다.
월출산은 사방 어디에서 보나 그 바위들이 조각을 해 놓은 듯, 그림과도 같이 아름다운 산이다.
우리 셋은 아침 식사로 사과와 오이, 방울 토마토로 해결하고, 6시 30분에 숙소에서 나와 7시 12분에 월출산에 도착하여 물 한 병을 들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늘도 일등이었다. 산은 온통 바위로 되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고 또 오르니 가파르기가 꽤나 심하다. 옛날에 정상을 넘어 반대편 무위사로 하산한 적이 있다. 지금은 출렁다리까지가 한계다.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며 쉬엄 쉬엄 올랐다. 두 분께서는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나를 기다려 주는 마음을 써 주셨다. 공중에 매어 달린 듯한 출렁다리까지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
내려오던 중에 서울에서 오신 두 분을 만나 서로 말을 주고받다 보니 그 분들 께서는 연세가 76세, 75세란다.


우리 부부는 아직 청춘이네! 위로받으며 미소 지었다.
금호가든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금호가든은 염소가 전문이다. 우리는 케냐에 처음 갔을 때 부터 으레 염소 소금 바비큐로 잔칫날을 잡는다. 일행 모두가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난 후에 포식을 한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때부터 한국에 왔을 때 봄이며 한 차례씩 월출산행 스케줄을 잡고 금호가든에서 삼박 사일동 안 몸보신 한다.
너무 맛이 있었다. 오히려 질리지도 않으냐는 주인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장보고

장보고 기념관이 있는 해남 완도 청해진 신지도.
신라의 무장인 장보고는 완도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젊은 시절 당나라로 건너간 장보고는 서주의 무령군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워 30세(819년)에 군사 일천 명을 지휘하는 군중소장이 되었다.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828년 흥덕왕을 알현하고 청해진대사로 임명되었으며 일만 명의 군가를 얻어 청해진을 설치하고 서남해안 일대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을 소탕하였다.
청해진은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한국 – 중국 – 일본을 잇는 대외 해상무역의 전진 기지였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하여 중계무역을 하기도 했다.
해상 세계를 석권한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왕위계승 분쟁에 휘말려 귀족인 김양의 사주를 받은 염방에 의해 841년 암살당하였다.

장보고 기념관과 청해진의 본부 동상을 둘러보고 난 뒤 우리는 신지도를 잇는 다리가 보여 그곳으로 갔다. 바다에는 양식장들이 많이 보였다.
천혜의 관광지 명사십리 해수욕장까지 갔다가 다시 나와 완도에서 팥빙수 한 그릇을 먹었다. 시골 팥빙수인데 무척 맛이 좋았다. 관광객같이 보이는 우리 모습에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재료를 넉넉히 넣어 맛있게 맛을 낸 그 주인이 고마웠다. 나중에 이곳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와서 팥빙수를 먹어야지.
신지도를 잇는 대교가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다리가 없었을 땐 배를 타야만 갈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신지도에 들어가 위아래로 오가며 해수욕장 등 양식장도 가보고 신지도 대교를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신지도는 유인도 2개, 무인도 11개로 이루어진 청정해역으로 고품질 어류 양식장이 있고, 항일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던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해상에서 전쟁의 상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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