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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고염옥의 좌충우돌 산행기
36. 고창읍성과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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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9  09: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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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우리 친구 일곱 명과 맛있는 점심을 줄포에서 장어구이를 먹고 나와 약 20분 만에 고창읍성에 도착했다. 몇 번이고 오려고 벼르기만 했는데 오늘에야 올 수 있었다.
고창읍을 내려다 보면서 한 바퀴 돌도록 성벽 위로 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 성은 조선단종 원년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지역 주민들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또한 이성은 나주 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읍성이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성의 둘레는 1,684m이며, 높이는 4~6m로서 동문, 서문, 북문과 옹성 6개소 등 전략적 요충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객사 등 22동의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실된 것을 1967년부터 복원해 오고 있다.
부녀자들의 답성 풍속이 남아 있어 음력 윤달이 있는 해에 답성놀이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고창읍성에 도착하니 정문은 북문이었는데 성곽과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단종 원년 당시 19개에 군, 현이 참여하여 축성 당시 각 고을에서 성 쌓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쌍은 구간과 고을 이름을 성벽에 새겨 두고 갔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일부가 훼손되어 잘 보이지 않아 각종 문헌과 현장조사 자료를 참고하여 1997년에 고을 표석을 만들어 축성 구간을 찾아 성 외곽에 세워 놓았다.


북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죄인들을 가두는 곳으로 감옥이 있었는데 남녀로 나누어 만들고 높은 담을 둥글게 둘러쳐 생겨난 이름이 원옥이라 한다. 조금 들어가니까 관청이 있었는데 이곳은 지방관아에 관한 주방 사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수령들의 가족 식생활을 비롯한 빈객의 접대와 각종 잔치에 필요한 물품 조달 및 회계 사무를 관장하였다.


또 조금 올라가니까 동문도 있었다. 동문 정상에 서서 바라보니 읍내도 한눈에 보이고 방장산도 잘 보였다. 성곽 위로 걷는 길을 잘 손질해 놓아 걷기가 참으로 편하다. 한 바퀴 돌면서 성읍도 잘 보이고 성을 지키던 초소도 잘 보았고 성곽 밑으로는 철쭉 꽃 나무도 장식을 해놓아 5월 8일경이면 아름다운 한 장면이 보일 것 같다.


북문을 중심으로 서문과 동문은 가까이 있었고 3개소의 성문 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싸고 그 위에 담을 쌓아 성 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성 안 담에는 넝쿨들 줄기가 있는 것을 보아 여름이면 성벽에도 푸른 옷을 입을 것 같다. 성벽 밑에 목련도 꽃 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들은 고창읍성을 탐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죽도에서 주꾸미로 저녁 식사를 하고 친구들은 서울로 가고 나는 수련원으로 돌아왔다.

고인돌

부천에서 출발하여 서해안고속도로에서 고창으로 진입하여 이정표대로 잘 찾아갔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길이 너무 잘 되어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갖게 한다.
주차장 앞에는 기념관 뿐 고인돌 군이 보이지 않았다. 무료 입장하여 3층까지 구경 잘 하고 2층으로 나와 선사시대에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집들을 구경하며 건너편 산 밑 돌무덤 군으로 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청동기 시대를 비롯하여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단다.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발굴된 유물을 통하여 고인돌 시대의 생활방식을 포함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란다.


축조 시기는 청동기 시대 기간에 해당되지만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고인돌의 크기나 모양은 다르지만 상석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작은 보조석으로 기반 시설을 충분히 다지거나 판석을 견고하게 지탱하기 위해 작은 보조 돌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고인돌은 타자석, 바둑판식, 지상석관식, 개선식 등 여러가지 방식이 있었으나 대개 탁자식이 전형적인 방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굄돌은 유실된 것들이 많았다. 무덤방이 어디인지 한 기마다 확인하지 않으면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단다. 봉분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들도 있었다.
고인돌 군에는 오베이골 탐방로도 잘 손질되어 있었다. 사실재, 행정재, 직업재, 굴치재, 백운제 등 다섯 개의 길로 주봉인 화시봉을 연결하는 등산로도 있었다. 오베이골의 탐방로도 1~6코스까지 되어 있다.
고인돌은 2,00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군산-고창 간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 되면서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수몰 지구나 도로 공사 때 발굴조사 했단다.
자전거도 대여해 주고 장난감 같은 열차도 고인돌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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