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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금성산성과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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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2  10: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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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담양에서 하룻밤을 자고 싸 온 것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산성으로 갔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감회가 깊다.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루에 두 시간 정도 걷기 운동은 정말로 지키기가 어렵다. 나 자신과의 싸움인데도 작심삼일이다.


처음 시작 길은 잘 다듬어 놓아 걷기가 아주 편안했다. 오를수록 경사도 있었지만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 같은 느낌이었다. 약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산성이 보였다. 산성부터는 완전히 절벽 위에 등산로다.
금성산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대표적인 형태로 산의 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조했다. 산성은 대개가 평야를 앞에 둔 산에 자리잡은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평지와는 동떨어진 깊은 산속에 자리잡아 쌓은 성이기도 하다. 연대봉, 시루봉, 노적봉, 철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내성과 외성으로 성벽을 쌓았고 절벽인 곳은 절벽으로 이어졌다.


금성산성 축성은 고려 말 이전으로 추정되나 알 수 없지만 ‘고려사절도’ 에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우왕 때 축조한 것으로 본다. 주변이 절벽이라 접근이 어려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임진왜란 때는 의병의 거점이 되었으며, 고려시대 몽고군 침입 시 주요 주둔지 역할을 하는 등 군사 요충지로 활동되었다.
정유재란 이후 중수 보수를 여러 차례 했으며, 녹두장군 전봉준은 삼개월 간 금성산성에서 운둔하면서 흩어져 있던 동학 농민군을 모아 일본군과 본성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이때 성내 주요 건물이 소실되었고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의 터만 남아 있다.


또한 6.25 전쟁 때에는 성 안에 있던 보국사가 불에 타 현재 주춧돌만 확인된다. 지금의 모습은 성곽과 더불어 1989년부터 중수 공사한 것이다.
성곽이 있는 곳은 모두 타방하고 정상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어 등허리에 땀은 나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 추웠다. 하산할 때는 질러 내려오는 길로 내려왔다. 밑에 아기자기한 작은 습지가 있는데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주변이 수목원이고 야생화도 심어져 있고 차나무도 있었고 한쪽에서는 풀을 뽑아주는 팀도 있었다. 나는 수련원 화단의 잡풀을 연상하며 마음이 바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무등산

무등산 가는 길에 가사문화관과 소쇄원을 탐방하기로 했다. 담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찾아가기가 쉬웠다. 도로를 몇 번 바꿔 가며 가다 보니 광주호 옆에 자리잡은 가사문학관이 있었다.
가사문학관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곳은 지역에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모순된 현실 정치를 참지 못하고 자신들의 큰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낙담하여, 무등산 주변에 누각과 정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고, 후진 양성에 힘 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는 구국에 앞장섰다.


정철의 성산별곡 등 18편이 전승되고 있어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전시품도 있고 송순의 면양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둘러보고 나와 소쇄원으로 갔다. 주차장이 없어 길가에 어정쩡하게 세워 놓고 소쇄원으로 갔다.
대전에서 중학생들이 탐방하고 있는 터라 복잡했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에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양산보가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소쇄원에는 영조 31년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원형을 추정하 수 있다. 이 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산실이기도 했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다.
다시 나와 무등산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가까웠다. 무등산 수박 간판들도 보였다.
북쪽 방향에는 중턱까지 길이 나 있어 단숨에 올라와 주차를 하고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만 5시간이 걸린다니 아예 포기하고 입구에서 맴돌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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