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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고염옥의 좌충우돌 산행기
41. 주흘산1관문과 조령산3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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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3  09: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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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산1관문

오늘은 장거리라 운전하기가 좀 힘들고 부담은 되겠지만 여행할 때 혼자하면 좋은 점도 참 많다 이젠 혼자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단숨에 월악산 넘어 도립공원까지 왔다. 점심은 생각이 별로 없어 빵 한 대와 커피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온 터라 바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뺨도 가리고 모자도 푹 쓰고 눈만 내놓고 입김에 따스한 느낌으로 추위를 막고 내복까지 입었으니 조령 1관문 앞에 도착하니 벌써 땀이 나기 시작했다.
1관문은 2~3관문보다 성터가 길게 산 위까지 석성이 쌓여 있었다. 물론 보수를 했겠지!
1관문은 백두대간 마루를 넘나드는 이 고개는 조선 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억새가 우거진 고개로 하늘재와 주흘산 사이의 고개로 옛날 선비들이 청운의 꿈과 민초들의 삶과 땀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의 삼대 발원지인 조령약수에서 시작되는 새재 계곡은 약 7km에 이르는 황톳길과 문화유적, 천혜의 자연경관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문화보호 구역,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전하고 있다.


성 안에 바로 문경 새재 오픈 세트장이 있는데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우수하고 그럴듯하게 자연과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것도 있고 세트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었다. 조령원 터 같은 것은 역사 유물이다. 마침 드라마 제중원을 촬영 하고 있었다.
옛 길목에는 마당바위가 있었는데 옛날 선비와 길손들이 오갈 때 이곳을 지날 때면 시장기가 있을 때라 바위에 음식을 놓고 무인 판매되고 있었다고 한다. 음식값은 전대에 넣고 갔다 한다. 마당바위 보이는 곳이 주막이 있는 것을 보면 옛날에도 집이 있었나 보다. 또 얼마를 가니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는 산적들이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료 명목으로 돈을 강탈하던 곳이기도 하였단다.
또 얼마를 가니까 이번에는 큰 디딜방아가 있었다. 그 모습이 옛날과 똑같았다. 일제 시대에 송진 체취로 상처받은 소나무도 있었다.


걷다 보니 힘에 부치고 넓적다리가 얼어 춥게 느껴질 때 관내에서 식장을 한다는 젊은 부부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오늘도 왕복 2시간 20분동안 걸었으니 오늘 몫은 한 셈이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려고 해 마당가든에서 맛있는 청국장 찌개와 반찬이 옛 맛 그대로 주인 솜씨가 손맛을 내는 집이라 이 부근에 오면 멀어도 꼭 이 집에서 식사를 하곤 한다.
원래 계획은 숙박을 할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어서 무리지만 당일치기 여행을 했다.

조령산3관문

관리소 직원들이 아직 출근 전이라 무사 통과해 조령 3문 앞까지 갈 수 있었다. 백두대간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를 너는 이 고개는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로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 하며 새재라고도 했다.
조령은 조선 시대에 영남과 한양을 잇는 길목으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 놓고 쉬어 갔다는 전설도 있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져다는 속설을 피해 장원 급제라는 청운의 꿈을 이루려는 수많은 선비가 한양으로 갔으며, 또 금의환향으로 이 고개를 넘었다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 차 제 아들을 보내어 시험해 보았다는 전설이 있다.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며 군사적 요새지. 삼국시대에는 계십령(이화령)이 더 중요하였는데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장들도 이 곳을 이용하였다. 이때 조정에서는 신립 장군이 현재 제3관문을 지키지 못하자 제2관문을 다시 세웠다. 그 후 숙종 34년에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세웠다.
옛날 새재 길을 지나던 길손이 갑작스러운 소낙비를 만나 바위굴에 들어오니 마침 과년 한 처녀가 이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어 두 남녀가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졌으나 다시 만날 길이 없었는데 그 후 처녀가 아이를 낳아 아이가 성장한 후 아이를 통해 아버지를 찾아 잘 살았다는 줄거리의 바위굴이 있었다.


조선시대 선현들이 문경 새재를 넘나들며 남겨 좋은 한시들을 감상할 수 있는 옛길이기도 하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청산 계곡 사이로 흐르는 조곡약수는 맑고 맛이 좋아 길손들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 조는 양약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도 제3관문에서 2관문까지 3.4km, 왕복 6.8km를 걸었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 많이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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