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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고염옥의 좌충우돌 산행기
43. 사인암과 탄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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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7  09: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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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

단양으로 진입하여 두악산 줄기의 마을 풍경을 감상하면서 대미산을 넘어 찬물내기란 계곡으로 갔다. 도락산 줄기 계곡에서 자리한 두악산에 소선암 자연휴양림 산림과 숲 속 계곡이 주는 행복함 바로 그런 곳이다. 더욱 등산도 할 수 있어서 휴가지로 꼽을 만한 곳이다. 황장산도 약 15km 전방에 있다. 근방에는 사인암, 방곡도예원, 단양 유황온천, 괴암괴석 천년 고찰 등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길가의 멋진 소나무 앞에 발길을 멈췄다. 임진왜란 때 장수 이여송이 당시(1598년)에 명당자리로 정한 곳이기도 하다. 정대감이란 사람의 아들이 이곳에 왔다가 자기 종이 말의 발에 차여서 죽게 되자 그 말을 죽여서 묻었다 하며 말 무덤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덤이 두 개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백두대간의 명산들이 병품처럼 둘러싸여 있다. 문복대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서 서성대기만 했다. 눈앞에 수리봉을 바라보기만 하고 길가의 방곡도예원 옆에 노인회관이 있었는데 차와 식사를 하는 곳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황장산을 넘어 사인암으로 향했다.
사인암이란 역동 우탁 선생이 사인 벼슬에 있을 때 조선 성종 때 이곳에서 주역을 해득하고 성리학을 강론하며 신유학에 힘썼으며 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감찰 규정에 있을 때 도끼를 둘러메고 충선왕 비행에 상서를 올린 바 있다. 그 후 임제광 단양군수가 선생을 추모하여 사인암이라 이름 지었다.


사인암은 기묘한 조각 작품과도 같다. 높은 건축물 빌딩 위에 몇 층 석탑이 있는 듯하다.
상선암은 우뚝 솟은 바위를 말하며 이 앞에서 양쪽으로 남대천 계곡물이 흘러간다. 정면에서 보면 섬인 양 싶은데 뒷면은 마을과 연결되었다.
중선암에는 바위 솟대 기둥이 많이 있다. 자연으로 솟은 돌이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다리 난간에서 한참을 서 있게 만들었다.


하선암은 한 폭의 그림 장면을 연상케 한다.
사인암은 높고 기묘한 암석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풍화되어 있는 흔적들 때문에 세월이란 것을 느끼게 한다. 사인암 밑을 흐르고 있는 남대천은 굽이굽이 이 일대를 감돌고 있으며, 수려한 절경으로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사인암을 둘러보고 난 뒤 걸을 곳을 찾아 이정표를 따라 산속 깊이 휴양림으로 갔다. 계곡 옆으로 길이 되어 있고 어수선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를 따라 산길을 혼자서 흥얼거리며 걸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양만큼 걷고 내려왔다.

탄금대

충주 IC를 나와 충주 방향으로 가다 육교를 지나 좌회전하여 충주역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였다. 이정표를 보니 행정 구역이 제천시 같다.
예전에 약 25년 전 연탄불에 밥 지어 먹던 시절에 단체로 이곳에 와 연탄불을 피워 놓고 그 추운 겨울에 고기 구워 먹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만큼이나 지났다.


그때 고기 구워 먹던 곳은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새로 단장되어 있었다. 강가에서 놀던 장소는 아예 없어졌다. 지금은 모터보트도 있고 강물 위에 골프 연습장도 있고 수상스키도 있고 보이는 곳마다 공사 중에 있다. 2012년에 세계 조정 경기 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하여 강에 다리도 새로 건설 중이고, 고속도로 연결도로도 공사 중이고 주변이 복잡하다.
탄금대는 원대 대문산이라고 불려 오던 작은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이 흐르며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 곳이다.


지금부터 1400여 년 전 신라 진흥왕 때에 우륵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라 한다. 우륵은 가야금을 만든 당시에 사람으로 가야국이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니 진흥왕이 기뻐하며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며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와 만덕을 수습시켜 우륵을 보호케 하였으며, 우륵은 항상 산상 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탄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신립 장군이 휘하장병 8천을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왜장 소서행장을 맞아 격전 끝에 전운이 불리하여 참패하게 되자 장강백파에 투신하여 순국한 전적지로 유명하며,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는 100척이나 되는 절벽 열두대라는 곳이 있는데 신립 장군이 전시에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신민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열두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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