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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강화걷기와 수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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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1  11: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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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걷기

출근 전 시간을 이용하여 아침 일찍 고려궁지-북문(북장대)-오읍약수터-연미정을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강화도에 들어서기까지 단걸음에 와 군청 앞에서 이정표를 따라 바로 찾아올 수 있었다.
출근 전이라 매표소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두리번거리다가 담 너머로 발꿈치를 들고 들여다보았다.
고려궁지는 고려 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몽골의 침략 때 대항하여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다가 몽골과 화친하여 환도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파괴하였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왕이 행차 시 머무는 행궁을 건립하였는데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된 것을 1977년부터 강화의 중요 국방유적 복원 정화 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담을 끼고 돌다가 길을 묻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웠는데,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모습을 관심 있게 바라보다가 그 일이 야생화와 관계된 일이기에 말을 건네 보았다.
“산성 올라가는 길이 어디예요?”
“산길은 험하니 길 따라 가세요.”
나는 자연스럽게 꽃모종에 대해 질문을 하다 보니까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고 그 곳에서 뜻밖에 생각지도 못한 큰 소득을 올렸다. 그분은 교육도 시켜 가며 심을 수 있는지 여부도 생각하며 확인해 주시며 내가 모르는 꽃이름까지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나는 길 따라 진송루(북문)까지 가서 주차하고 이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북문은 보수를 했고 성곽은 아직 준비 중에 있다. 성문 밖으로부터 걷는 길이 잘 되어 있었고 연미정까지도 인도와 논둑길과 차도로 연결하여 잘 되어 있었다.
연미정은 고려 고종 때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놓고 면학케 했다는 기록이 있는 곳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 그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부른 것이며, 정묘호란 시 후금(청나라)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이기도 하다.
나오는 길에 강화 고인돌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수원성(남, 동문)

오늘은 수원성을 천명철 님의 도움을 받아 돌아보기로 했다. 수원에서 아주 유명한 갈비탕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먼저 남문으로 향했다.
수원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재래시장 입구의 차도 한복판에 덩그렇게 성벽 없이 수원성 남문(팔달문)이 있다. 길옆에 차를 세워 놓은 채 나만 내려 사진 한 장 찍으려니 오가는 차들 때문에 겨우 차를 피해 한 장 찍고 마음대로 포즈를 잡을 수 없었다.


남문에서 먼저 성터 봉화대로 갔다. 성 안이 사람들의 주거지이기 때문에 바로 주차장으로 연결되었다.
내가 시집 올 당시에는 성터 흔적뿐 흔히 말하는 달동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외곽이었는데 성곽을 보수하여 지금은 누가 보아도 옛날 성터로 알 수 있도록 육안에 들어왔다. 남문을 제외한 성터 길을 한 바퀴 돌도록 길을 만들어 누구라도 걸어 봉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봉화대 봉돈에는 다섯 개에 화두가 있는데 남쪽 기준으로 시작하여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를 올리고 적군이 국경 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 국정선에 도달하면 3개,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 4개,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 5개를 모두 올렸단다. 봉돈을 방어하기 위해 동이포루라는 초소나 군사 대기소도 있었다. 이 동이포루는 정조 20년에 완공되었다.


창룡문도 있었는데 이 문은 화성 4대문 중 동똑 문으로 정조가 완공한 것인데 한국전쟁으로 문루가 파괴되었던 것을 1976년에 중건하였다. 문을 열어 놓아 사람들이 오갔다. 성곽을 한 바퀴 도는 화성열차도 있었다.
원래 북수문이었다고 하는 화흥문도 있었는데 화성을 의미하는 화자와 무지개를 뜻하는 홍자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라 수원 팔경의 하나이며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수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하여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였단다.
동북각루도 있는데 이곳은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방화수류정’ 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꽃을 쫓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를 뜻하며, 특히 벽면의 십자가 무늬는 조선 시대 건축의 대표적인 문양이기도 하고 정약용의 신앙적인 면도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뒷면에 용연이란 연못이 있는데 이곳은 옛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인공적인 것 같기도 하다.
5월 보름달이 뜨고 밤이면 봄꽃과 함께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 팔경의 하나로 사진작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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