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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녀가 있었다, 삶의 무게여…김민정 '엄마의 도쿄'
시사한국 문화팀  |  webmaster@sisa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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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25  09: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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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음악다방의 매력적인 DJ, 3대가 모여 사는 시골 부잣집 며느리, 아이 둘을 키워낸 당당한 싱글맘, 신주쿠 심야식당의 알뜰한 여사장.

짧은 인생에 찾아온 사건은 유난히 진폭이 컸고, 그만큼 강렬했다. 영화 같은 삶을 산 엄마였다. 엄마의 특별했던 인생을 기록하는 것은,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김민정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엄마의 삶은 그렇게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1992년, 가족은 일본으로 건너왔다. 김민정에게는 아빠의 죽음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일본행이었다. 열여섯의 딸은 남들보다 더 빨리 철이 들었고, 마흔의 엄마는 남들보다 더 바쁘게 살았다. 뒤돌아보니 도쿄에는 '엄마의 도쿄' 그리고 '나의 도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수많은 추억이 쌓였다.

이 모녀의 스무 해 도쿄살이를 담은 책이 '엄마의 도쿄'다. 도쿄가 낯선 도시에서 편안한 일상의 배경이 되어가는 동안, 엄마와 딸이 즐겨 찾는 밥집, 카페, 빵집, 옷가게, 재즈바, 잡화점, 거리도 늘어났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선물해준 장소는 하나같이 소란스럽지 않은 맛과 멋을 보여준다. 애써 위로하지 않고 말없이 서로를 보듬어온 엄마와 딸의 선택답다.

엄마가 골든가의 바 가르강튀아에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때로는 우연이 운명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가르강튀아는 일본의 지성으로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대학교를 중퇴하고 문을 연 가게다. 1970년대 골든가의 술집은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아지트였다. 과거 암시장과 매춘가로 쓰였던 어둠의 공간이라 지금도 골목은 좁고 지저분하다. 그런데 이곳에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연극을 올리는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가르강튀아를 통해 골든가를 알게 된 엄마는 직접 바를 열었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뒤에는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던 젊은 날의 향수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파인트리. 엄마의 가게는 심야식당이었다. 손님들은 배가 고파 찾아왔고, 사람이 그리워 찾아왔다. 골든가를 배경으로 한 만화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따뜻한 주인장처럼, 엄마는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으로 손님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줬다. 술 한 잔을 손님 앞에 놓아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도 했다. 신주쿠 골든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유일한 한국인 사장이었던 엄마는 '영 상'으로 통했다.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엄마는 그 이름처럼 쉬지 않고 일했다.

엄마에게 담배는 남편의 빈자리로 인한 헛헛한 속을 달래고, 새벽마다 가게를 오가는 고된 일과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엄마의 손에는 독한 담배 '세븐 스타'가 들려 있었다. 커피도 각별한 존재였다. 일본에 온 후로는 꼭 끽다실 르누아르 커피점만을 고집했는데,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작은 컵에 담긴 진한 커피를 마시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끽다실 르누아르는 엄마를 온전히 위로하는 공간이었다.

의사는 엄마의 입천장에 암세포가 퍼지고 있다고 했다. 엄마의 희망이었던 파인트리 때문인지, 엄마의 벗이었던 담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김민정이 첫 아이를 낳은 병원에서 엄마는 암을 선고받았다. 엄마는 환자가 아닌 것처럼 계속해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엄마의 소원대로 장례는 성당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엄마의 유품에서 발견한 일기장은 아빠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딸은 일기장에서 강인한 엄마가 아닌 연약한 여자를 처음 발견한다. 늘 새것 같던 엄마의 노란 플랫 슈즈 안쪽은 닳고 닳아 찢어져 있었다는 것도, 늘 그 자리를 지킬 것 같던 엄마의 열쇠고리에 'I will fly away'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엄마에게 떨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기 위해 노력했던 조숙한 딸이었지만, 김민정은 엄마의 새로운 연인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녀는 처음부터 절반의 이해로만 맺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인지 모른다. 엄마를 기억하는 섬세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끝맺으며 저자는 무척이나 솔직한 고백을 꺼내놓는다.

'엄마의 도쿄'는 엄마를 긍정하고 또 부정하면서 자란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모든 여자는 결국 엄마를 긍정하고 또 긍정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는 걸 세상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겐 딸이 꼭 필요하다'는 그 말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게 아닐까. 256쪽, 1만3800원, 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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