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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고 믿어줘 고맙습니다" 30년만에 꺼낸 5·18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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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8  11: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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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툭 터진 것 같아요."

올해 76세, 박유덕 할머니는 30여년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낸 뒤 비로소 웃었다.

지난 1942년 전남 나주에서 장녀로 태어난 박 할머니는 광주로 올라와 기술을 배우던 중 하숙집 주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 4남매를 낳고 오순도순 살았다.

그러나 1980년 5월은 박 할머니 가족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꿨다.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들을 치료했던 남편이 붙잡혀 1년6개월을 선고 받고 수감된 것.

석방 후 갖은 고문에 망가진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남편은 '횃불회' 모임에 나갔다는 이유로 또 다시 수감됐고, 고문 끝에 1982년 5월30일 광주교도소에서 숨졌다. 1980년대 공안 사건인 '횃불회'는 지난해 법원이 3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관련자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벗었다.

"어린 자식들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느라 면회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렇게 먹고 싶다던 찰밥이라도 해줬으면…." 박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남편이 떠난 뒤에도 계속됐다.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 이웃들의 도움으로 탄원서를 냈는데 경찰과 당시 안기부 직원들이 찾아와 탄원을 낸 명단을 불라며 겁박했다.

박 할머니는 "우울증에 걸리자 나를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했다. 힘을 다해 뿌리쳤다. 자식들에게도 말 못하고 이날까지 혼자 울기만 했다. (남편에 대한)죄책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30여 년간 삼켜온 속마음을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마련한 증언치료프로그램 '마이데이(MY DAY)'를 통해 어렵게 쏟아낸 박 할머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덕분에)마음이 툭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최근 발간한 '마이데이' 기록집Ⅰ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에는 박 할머니를 포함한 5·18 생존자 6명이 처음으로 털어놓은 사연과 고백이 담겨 있다.

센터는 그 동안 5·18민주화운동의 부상자, 유가족, 구속자, 시민 등 10명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그 중 6명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출소 후 10년 가까이 경찰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를 당하며 취업에 불이익을 받고 차별과 억압된 삶을 살아왔던 그들의 삶이 기록돼 있다.

전남도청에서 붙잡혀 상무대로 끌려가 40일간 고문을 받고 풀려났던 박천만(56)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내 말을 믿어줘 고맙다"며 "5월 광주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로는 못할망정 욕은 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참여자 최용식(61)씨는 "광주시민은 누구나 유공자다. 김밥 싸 준 사람도 있고 담배 사준 사람, 헌혈한 사람 다 똑같은 유공자"라고 말했다.

'국가로부터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아픈 현실'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산 사람들은 모두 죄인'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다'는 고백부터 5·18 때 공수부대원들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아들을 잃은 80대 노모의 '남은 인생 건강히 살다 너에게 가마'라는 독백까지, 30여 년간 꺼내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이 이 책에 고스란히 실렸다.

정찬영 마이데이 진행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7일 "광주가 겪은 아픔 중에서, 지난 35년간 우리가 가장 돌보니 못한 것은 바로 당사자와 가족의 심리적 외상과 후유증"이라며 "세월호 유족들이 광주 5월 가족에게 큰 위로의 힘을 느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혼자 극복할 수 있는 트라우마는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용기 내어 말해주어, 귀 기울여 들어줘 고맙습니다'가 마이데이의 부제다"면서 "마이데이는 고통을 떠나보내는 치유 의식이며 공개적으로 어두운 역사를 증언하는 기록의 무대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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